1월 24일 오전, 충남 서산 간월도에 갔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곳은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방파제 앞이었다. 끝에는 빨간 표지가 서 있었고, 난간 사이로 겨울 바다가 보였다. 맑은 하늘 아래 길 바닥에는 눈이 얇게 남아 있었다. 같은 날 간월암으로 이어진 길도 열려 있어 암자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이날 간월도에서 기억에 남은 것은 이름난 낙조가 아니라, 눈과 갯벌과 바다가 함께 보이던 오전의 풍경이다.
눈이 남은 방파제 앞에서
방파제 사진을 찍은 시각은 오전 10시 54분이다. 바다 쪽으로 곧게 이어진 길 끝에 작은 빨간 표지가 서 있고, 난간의 그림자가 눈 덮인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하늘은 구름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파랗지만, 발밑만 보면 한겨울이다. 바닷물이 남은 쪽은 짙은 파란색이고, 방파제 가장자리에는 검은 돌이 드러나 있었다. 길 위에는 흰 눈, 난간 너머에는 푸른 물이 놓인 장면이 간월도의 첫인상으로 남았다.
밝은 하늘만 보면 겨울이라는 사실을 잊기 쉬웠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 남은 눈과 난간 밑의 긴 그림자가 실제 계절을 알려 줬다. 이날의 사진을 다시 골라도 방파제 장면부터 두고 싶은 이유다. 바다를 보러 왔지만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물빛보다 바다로 나아가는 길의 상태였다. 겨울 해안 산책에서는 멀리 볼 풍경과 가까이 디딜 곳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방파제 쪽에서 시선을 돌리자 바닷가의 모습이 달라졌다. 물이 닿지 않는 자리는 자갈과 검은 바위로 드러나 있고, 그 위에는 소나무가 몸을 기울여 자라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작은 암자와 해안이 한 장면에 붙어 있지만, 가까이 서면 물가의 돌과 나무, 그 사이로 난 길이 따로 보인다. 간월도 사진이 온통 바다색만일 거라 생각했다면, 이 바위와 소나무가 의외의 장면이다.

물이 빠진 길 너머의 간월암
조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간월암이 자리한 작은 바위섬과 그곳으로 이어진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양옆의 갯벌은 물 밖으로 나와 있었고, 사람들은 드러난 길을 따라 암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바다 위 건물을 멀리서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걸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특징이었다. 이날은 드러난 길로 암자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물때가 달라지면 같은 자리도 걸어 건널 수 없는 바닷길이 된다.
육지에서 볼 때는 암자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다. 그런데 건너가는 길 양쪽으로 드러난 갯벌을 보니, 이 짧은 거리가 하루 종일 열려 있는 도로와는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암자 쪽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마주 지나가는 모습까지 들어와, 작은 섬의 크기도 짐작할 수 있었다. 멀리서 지붕만 보고 돌아가는 것과 직접 건너가 보는 것 사이에 이 장면이 놓여 있었다.

길을 건너기 전 주변을 돌아보면 바다는 한 가지 색이 아니었다. 햇빛이 닿는 수면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물이 빠진 곳은 짙은 갈색과 검은 돌의 무늬를 드러냈다. 한쪽에는 물이 남아 있고, 다른 쪽에는 갯벌이 넓게 펼쳐졌다. 암자까지 건너가는 동안에는 건물보다 먼저 바닥과 물의 경계가 보였다. 사찰에 가는 길이 그날의 바다를 따라 정해지는 셈이었다.

소나무를 지나 경내로
암자 주변으로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계단과 낮은 난간이 이어졌다. 소나무 가지가 시야를 거의 채우고, 그 아래 계단 끝으로 자갈 해안과 푸른 물이 보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때는 바닷길이 먼저 보였는데, 계단에 서니 나무와 돌 틈 사이로 물이 보였다. 눈은 기와 위와 돌 틈에도 조금씩 남아 있었지만, 햇빛을 받은 계단과 길은 밝았다. 한겨울에 온 사실을 풍경의 곳곳이 알려 주고 있었다.

바닷길을 건너 간월암 경내에도 들어갔다. 건물의 기와에는 하얀 눈이 남아 있었고, 가까이에서는 처마의 녹색 단청과 붉은 기둥이 또렷했다. 바깥에서는 암자가 바다 위의 한 덩어리처럼 보였는데, 안에서 보니 문과 계단, 담장 옆의 작은 공간이 하나씩 구분됐다. 사람들은 경내와 바닷길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이곳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사진 명소이면서 실제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작은 사찰이라는 점이 함께 보였다.
문 가까이에서는 초록색 단청과 둥근 문양, 붉은 기둥이 바다보다 먼저 보인다. 넓은 백사장을 걸을 때와 달리 시야가 문과 처마 사이의 작은 사각형으로 좁아졌다. 그 틈으로 다시 바깥의 밝은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좋았다. 간월암은 전망을 보는 곳이면서 사람들이 참배하는 사찰이기도 하니, 문 앞이나 계단에서는 오가는 사람의 흐름을 살피며 잠시씩 멈춰 보는 편이 어울린다.

기와 너머로 다시 본 바다
경내에서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는 다른 색이 먼저 들어왔다. 기와지붕의 곡선과 눈, 그 아래 난간을 따라 매달린 작은 색등이 파란 바다 앞에 놓여 있었다. 물빛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드러난 갯벌은 그 바로 옆에서 어둡게 이어졌다. 바깥에서 암자를 바라볼 때는 지붕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면, 안에서는 지붕 한쪽과 그 너머의 수평선이 시야를 나눴다. 해안에서 암자를 바라볼 때와 경내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 같은 자리가 전혀 다른 풍경이 됐다.

암자에서 육지 쪽을 돌아보면 들어올 때 건넌 길과 갯벌이 다시 보인다. 계단 아래에서는 겨울옷을 입은 방문객들이 서로 마주 지나가고, 길 옆에는 물이 빠져 돌이 드러난 자리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들어올 때는 암자가 목적지라 앞을 봤다면, 안에서 돌아보니 그곳까지 이어진 길 자체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들어오면 같은 자리를 걸어서 오갈 수 없다는 설명이, 눈앞의 갯벌과 길을 보고 나서야 구체적으로 와닿았다.

간월암에 들어가는 시간과 돌아오는 길
내가 바닷길을 건넌 것은 1월의 오전이었지만, 오전에 오면 늘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서산시의 간월암 안내와 한국관광공사 소개는 조수에 따라 육지와 연결되는 장소임을 설명한다. 방문할 날짜의 물때와 현장 통행 안내를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다. 길이 보인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열려 있을지까지 알 수는 없다.
간월항과 간월암을 함께 둘러본 겨울 방문기를 보면 가까운 물가와 암자를 한 번에 묶어 걷는 방식도 참고할 만하다. 내 일정을 다시 짠다면 간월암 경내에 들어가는 시간을 먼저 정하고, 방파제와 해안 산책을 그 앞뒤에 붙이고 싶다. 일몰 시각에 맞추는 계획과 바닷길을 건너는 계획은 따로 확인해야 한다. 길이 닫힌 시간에 도착했다면 육지에서 섬을 바라보는 산책으로 바꿀 수 있지만,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시각이 빠듯해지는 일정은 피하는 편이 낫다. 사진을 찍는 시간까지 남겨 두어야 경내에서 바다를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
내 사진에는 일몰도, 유명한 음식도 없다. 대신 눈이 남은 방파제에서 시작해 돌 해안을 보고, 열린 길을 건너 암자 안에서 다시 바다를 본 순서가 남아 있다. 간월도는 겨울 오전에 걸어 들어간 작은 암자와, 안에 들어선 뒤 거꾸로 돌아보게 된 바닷길로 기억된다.
서해의 다른 계절은 여름 학암포와 신두리 해안사구 여행에 남겼다. 겨울 바닷길과 여름 사구를 나란히 보면 해안에서 걷는 방식도 달라진다.
여행·사진: 오늘물때 운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