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싱가포르에서 찍은 사진은 아침 식탁으로 시작해 마리나 베이의 야경으로 끝난다. 캄퐁글람의 낮은 상점가를 걷다가 차이나타운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마리나 베이 샌즈 전망대에 올랐다. 하루 동안 몇 번이나 건물의 높이와 거리의 색이 바뀌었다. 사진 속 시각을 따라 그 장면들을 다시 이어 본다.
아침 식탁에서 거리로
아홉 시 조금 넘은 시각, 토스터와 시리얼·잼이 놓인 아침 식사 공간을 찍었다. 그릇에는 밥과 볶음면을 담았고, 다른 접시에는 빵과 과일을 담았다. 접시에 담긴 음식과 조식대의 모습이 따로 남아 있어 그날의 시작이 또렷하다. 실내의 낮은 조명에 익숙해졌다가 밖으로 나오니 거리의 햇빛이 훨씬 밝게 느껴졌다. 아침을 먹은 뒤 바로 도시를 걷기 시작했다.



열 시 50분이 지나자 사진의 배경이 캄퐁글람 일대로 옮겨간다. 'Sultan Restaurant'이라는 큰 간판 아래에 무늬가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조금 옆에서는 야자나무가 맑은 하늘을 가렸다. 상점 앞의 무늬 의자와 거리 위의 야자나무가 이 구역의 첫인상이었다. 낮은 상점 뒤로 높은 건물이 올라와 있어 한 프레임에 서로 다른 높이의 도시가 담겼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나무 그늘, 가게 간판, 멀리 보이는 빌딩이 차례로 나타났다.


골목을 걷다 보면 색을 칠한 창틀과 벽이 연달아 나온다. 파란색과 노란색 건물이 이어진 길에서는 멀리서도 어느 집을 보았는지 구분할 수 있었다. 실내를 가득 채운 작은 램프를 보러 잠시 멈추기도 했다. 천장과 벽마다 모양이 다른 램프가 빽빽했다. 눈부신 거리에서 들어오자 작은 조명들이 훨씬 또렷하게 보였다. 한 번에 전부 보기 어려워 같은 가게 안에서도 정면과 옆 선반을 따로 찍었다.


거리 한쪽에는 건물 전체를 덮은 벽화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청록색 창문을 가진 오래된 상점이 있었다. 한 블록에서 조금만 걸어도 벽화, 간판, 창문의 색이 계속 달라졌다. 캄퐁글람을 한 장의 대표 사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날 오전의 사진도 특정 건물 하나보다 골목에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바뀌던 장면에 가깝다. 벽화가 큰 건물을 뒤덮은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니 청록색 창틀의 조용한 건물이 나왔고, 그 너머에는 다시 현대식 빌딩이 서 있었다. 짧은 거리 안에서 두 시대의 건물이 포개져 보였다.


파크뷰 스퀘어의 높은 천장
정오 무렵에는 파크뷰 스퀘어 쪽으로 걸었다. 거리에서 올려다본 건물은 앞서 지나온 상점들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인상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ATLAS라는 이름이 보였고, 장식이 많은 천장 아래 금속빛 조명과 긴 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검은색과 금색이 반복되는 실내는 밖에서 보던 외벽 못지않게 화려했다. 위를 올려다보면 장식이 천장 끝까지 이어지고,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바의 조명과 긴 좌석이 눈에 들어왔다. 오전 골목의 낮은 천장과 창문을 보고 온 뒤라 공간의 높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야자나무와 건물 외벽이 함께 보였다. 오전에 본 캄퐁글람의 벽화 골목과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도 분위기는 크게 달랐다. 이날 싱가포르를 걷는 재미는 멀리 이동해야만 새 풍경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길에서도 건물의 표정이 바뀐다는 점이었다.

차이나타운에서 점심을 먹다
오후 사진은 차이나타운 쪽에서 이어진다. 높은 건물 사이로 낮은 상점가가 들어오고, 길을 건너며 본 간판도 달라졌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곳은 사진에 이름이 분명히 남은 Hawker Chan이었다. 매장 앞에는 메뉴와 과거 미쉐린 수상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간판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들어가니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메뉴 사진과 매장의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거리의 더운 빛에서 실내로 들어온 뒤 마주한 점심이었다.


상에는 간장빛 소스가 올라간 닭고기와 밥 한 접시, 노란 면과 닭고기를 담은 접시가 나왔다. 채소와 달걀도 곁에 놓였다. 비슷한 닭고기라도 밥과 면 중 무엇과 함께 먹느냐에 따라 접시의 모습이 달랐다. 사진을 보면 소스가 음식 가장자리까지 넓게 퍼져 있고, 면은 따로 크게 한 덩어리로 담겨 있다. 밥 접시에는 닭고기 옆으로 달걀과 채소가 놓였고, 면 접시에는 윤기가 도는 닭고기와 잎채소가 함께 있었다. 두 가지를 나란히 놓으니 식탁은 꽤 풍성해 보였다. 과거 미쉐린 수상 이력에 기대가 컸지만, 막상 먹어 보니 내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유명한 집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맛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뒤에는 차이나타운의 길을 다시 걸었다. 가림막 아래로 사람이 모인 시장 통로가 이어졌고, 과일 가게 앞에는 두리안이 쌓여 있었다. 가격표가 달린 두리안과 손질해 담아 놓은 노란 과육을 가까이 찍었다. 가게 안쪽의 포장 용기에는 노란 과육이 줄지어 있었다. 가시가 있는 껍질을 그대로 둔 모습과 손질된 과육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시장 통로의 사람들 사이로 몇 걸음 옮기며 과일 가게를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이날 차이나타운에서 먹은 과일은 아주 맛있었고, 특히 망고스틴이 기억에 남는다. 사진에는 두리안 매대가 많이 남았지만, 실제로 가장 좋은 맛의 기억은 망고스틴이다. 그날의 음식 중에서는 점심보다 시장에서 먹은 과일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오후 두 시가 지나 들른 사원에서는 붉은 기둥과 금빛 불상, 작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에는 참배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이 함께 있다. 거리의 붉은 간판과 사원 안의 붉은 장식은 같은 색이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벽면의 작은 불상들과 앞쪽 제단을 한 번에 담으려니 화면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계속 바뀌었다. 관광지로 알려진 장소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실제로 머물고 기도하는 공간이라는 점이 사진에 함께 남았다. 사원 안에서는 걸음을 늦추고 내부를 둘러봤다.

저녁의 마리나 베이 샌즈
다음으로 남은 사진은 오후 여섯 시 무렵의 마리나 베이 샌즈 실내다. 건물 안 수로와 난간, 커다란 실내 화면 앞 피아노가 차례로 나타난다. 난간 아래에는 작은 배가 보였고, 다른 공간에서는 커다란 자연 풍경 화면 앞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낮의 골목과 시장에서는 간판과 사람의 움직임을 봤다면, 이곳에서는 물길과 실내 조명이 차례로 시선을 끌었다. 천장에서 길게 내려온 장식 아래를 지나 저녁을 보낼 곳으로 향했다.



전망대 입장료는 내게 꽤 비싸게 느껴졌다. 올라가기 전부터 그만한 값을 할까 생각했는데, 일곱 시 반을 넘겨 전망대에서 찍은 첫 사진에는 아직 어둡지 않은 하늘과 싱가포르 플라이어, 굽은 물가가 함께 들어 있다. 해가 진 뒤 같은 방향을 다시 보면 도시의 불빛이 더 또렷해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낮에 걸었던 좁은 골목과는 전혀 다른 크기의 싱가포르였다. 사진을 다시 보면 관람차의 동그란 윤곽을 기준으로 해안선이 휘어 들어가고, 그 뒤로 빌딩들이 층을 이룬다. 낮에 거리에서 올려다본 건물들을 밤에 위에서 내려다보니 방향 감각도 달라졌다. 수면이 건물 사이에 비스듬히 들어와 있어 빌딩만 보는 야경과는 달랐다.

반대편에는 어두운 정원과 밝게 빛나는 구조물이 보였다. 멀리 있는 도로의 불빛까지 한 화면에 담으려다 보니 낮에 찍던 거리 사진보다 시선을 오래 두게 됐다. 전망대에서의 사진에는 하늘이 완전히 검어지기 전의 색과, 밤이 깊어지며 선명해지는 조명이 따로 남아 있다. 둘 중 하나를 고르기보다 그 사이를 지켜본 시간이 좋았다.

스카이파크 전망대 안내판도 사진에 남겼다. 아침 식탁, 캄퐁글람의 벽화, 차이나타운의 점심, 높은 곳에서 본 마리나 베이까지 사진 속 장소는 모두 같은 날에 담겼다. 여러 곳을 빠르게 체크한 일정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거리에서 올려다보던 건물들을 밤에 다시 내려다본 하루로 남는다.

촬영 시각으로 정리한 동선은 아침 식사 → 캄퐁글람 → 파크뷰 스퀘어 → 차이나타운의 Hawker Chan과 사원 → 마리나 베이 샌즈 실내와 스카이파크 전망대다. 입맛에 맞지 않았던 유명 식당의 점심과 유난히 맛있었던 망고스틴, 비싸게 느껴진 전망대 입장료와 그곳에서 본 야경까지, 좋고 아쉬운 장면이 한 날에 함께 남았다. 오전 골목과 밤의 물가를 나란히 놓으니, 서로 다른 표정의 싱가포르를 한 번에 본 여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