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행오늘물때 저널
바다 여행 SEA NOTE 24

성산일출봉을 오르고 광치기에서 김녕까지, 제주 동쪽 바다의 하루

구름 낀 성산일출봉의 분화구에서 광치기해변으로 내려와 김녕의 맑은 물을 보고 동복리 저녁 식탁까지 이어간 7월 마지막 날의 여행기.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7월의 마지막 날 아침, 성산일출봉은 이름에 들어 있는 ‘일출’과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가 솟는 장면 대신 낮고 두꺼운 구름이 봉우리 위에 걸렸고, 입구의 돌하르방 너머로 검은 능선이 드러났다. 전날 동쪽 해안에서 바위를 가까이 보았다면, 이날은 그 바위가 만든 커다란 지형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볼 차례였다. 사진의 첫 시각은 오전 9시를 조금 넘긴다. 그때부터 점심의 식탁, 광치기해변, 김녕의 옅은 청록색 바다, 저녁의 동복리 식탁까지 한 방향으로 길이 이어진다. 하루를 묶어 주는 것은 유명한 이름보다 바다와 눈높이가 계속 달라진다는 감각이었다.

성산일출봉 입구 돌하르방과 봉우리
성산일출봉 입구의 돌하르방과 멀리 보이는 봉우리. 잿빛 하늘 아래 아침 산책이 시작됐다.

구름 밑에서 성산일출봉을 오르다

입구에서 올려다본 성산일출봉은 평평한 꼭대기보다 가장자리의 톱니 같은 바위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아래쪽은 풀이 부드럽게 덮고 있지만 위로 갈수록 선이 갑자기 가팔라진다. 하늘이 맑았다면 밝은 초록과 파란색의 대비가 컸을 텐데, 흐린 날에는 바위의 검은 윤곽과 풀의 결이 더 오래 보인다. 낮은 구름 덕분에 멀리서도 봉우리의 높이가 가늠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길을 걸어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이 더 흥미로웠다.

흐린 하늘 아래 성산일출봉의 초록 사면
입구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구름 아래의 검은 능선과 초록 사면이 대비된다.

발밑에는 현무암 블록이 촘촘히 놓였고 양쪽에는 나무 난간이 길을 잡아 준다. 사진에 남은 젖은 듯한 돌의 색은 여름 제주가 꼭 눈부신 햇빛만 보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길이 평탄하게 시작해도 정상 쪽은 계속 높아지므로 초반의 속도를 그대로 밀고 가기보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는 편이 좋았다. 돌아볼 때마다 방금 지나온 길이 풀밭 한가운데로 얇게 이어지고, 해안과 마을이 조금씩 화면에 들어온다. 올라가는 행위 자체보다 그 높이가 만들어 내는 시선의 변화가 이 아침의 중심이었다. 사진이 찍힌 순서를 보면 입구에서부터 분화구 가까이까지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을 맞춰 급히 오를 길은 아니었다. 돌이 놓인 부분과 풀밭이 만나는 부분이 번갈아 나오고, 바다 쪽으로 난 시야도 구간마다 폭이 달라진다. 한 번에 끝까지 올라가면 정상에서만 사진을 남기게 되지만 중간의 바위와 해안도 이 산을 이해하는 장면이었다.

현무암이 깔린 성산일출봉 산책길
풀이 자란 틈 사이로 현무암 길이 이어진다. 일출봉 초입의 발걸음이 남은 장면이다.
초록 풀이 펼쳐진 성산일출봉 사면
흐린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일출봉 풀밭. 낮은 난간이 언덕의 선을 따라간다.

조금 더 들어가자 덩굴이 감싼 커다란 바위가 길 옆에 섰다. 멀리서는 초록색 기둥처럼 보이고, 가까이에서는 잎 아래에 드러난 거친 돌 표면이 보인다. 안내판에는 ‘등경돌’이라는 이름과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름을 알기 전에는 그저 특이하게 솟은 바위였는데, 설명을 읽고 다시 보니 길가에 오래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본 물건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식물은 바위를 완전히 가리지 않고 틈새로 윤곽을 남겨 두었다. 아침의 구름과 바람 속에서 유난히 잘 어울리는 모양이었다.

덩굴이 감싼 성산일출봉 등경돌
등경돌에 덩굴이 빽빽하게 올라간 모습. 바위가 초록 기둥처럼 보인다.
등경돌의 이름과 이야기를 적은 안내판
등경돌의 이름과 이야기를 적은 안내판. 산책길의 바위를 다시 보게 했다.

길은 한쪽으로 산비탈을 끼고, 다른 쪽으로 바다를 조금씩 열어 보인다. 바위기둥을 지나면 섬처럼 보이던 봉우리가 어느새 내 옆의 절벽이 된다. 해안을 내려다보는 지점에서는 바닷가의 길과 마을, 바다에 놓인 작은 배가 한 화면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만 보면 넓은 풍경이 먼저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로 옆에 솟은 바위가 시선을 붙잡아 멀리와 가까이를 번갈아 보게 된다. 정상만을 목표로 했다면 지나쳤을 장면이다. 잠깐 멈춰 발아래의 바닷길을 보고 나서 다시 올라가는 시간이 좋았다.

성산일출봉 산길 옆의 높이 솟은 바위
산길 옆으로 솟은 일출봉의 바위기둥. 가까이에서 보니 거친 표면이 선명하다.
성산일출봉 중턱에서 본 절벽과 바다
비탈과 바다를 함께 담은 중턱 풍경. 아래쪽 해안이 서서히 드러난다.

분화구 가까이에 이르면 기대했던 바다 전망과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넓은 안쪽 사면이 초록 식물로 가득 차 있고, 그 가장자리를 울퉁불퉁한 바위가 둘러싼다. 구름이 낮아 맨 위의 윤곽은 선명하지 않지만, 오히려 초록색 내부가 더 깊어 보인다. 해가 뜨는 방향만 생각하며 왔다면 이 안쪽 풍경을 충분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성산일출봉은 바다를 향한 전망대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분화구를 가까이에서 보는 장소다. 제주관광공사는 이곳을 바다에서 형성된 수성 화산체이자 세계자연유산으로 소개한다. 그 설명이 어렵게 느껴져도 분화구의 크기와 둘레의 바위를 직접 보면 왜 이곳을 단순한 언덕이라고 부르기 어려운지 알게 된다. 성산일출봉 안내

초록 식물이 채운 성산일출봉 분화구
초록 식물이 채운 성산일출봉 분화구. 흐린 하늘이 능선 위에 낮게 걸렸다.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오조리와 성산 쪽 물가가 펼쳐진다. 위에서 보니 해안의 선은 단순하지 않았다. 좁은 땅이 바다 속으로 나가고, 얕은 물과 깊은 물이 서로 다른 색으로 놓인다. 날씨 때문에 먼 곳은 흐렸지만 가까운 들판과 마을은 또렷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올라갈 때 지나쳤던 풀밭과 난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같은 길을 거슬러 가는데도 방향이 바뀌니 일출봉이 앞에 있던 산에서 뒤에 남겨진 산으로 바뀐다. 멀리서 올려다보는 모습, 안쪽을 내려다보는 모습, 뒤돌아 확인하는 모습이 한 오전에 차례로 남았다.

성산일출봉 높은 곳에서 본 해안과 마을
일출봉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성산 쪽 해안과 마을. 바다가 여러 갈래로 들어온다.
성산일출봉에서 내려다본 넓은 만
구름이 내려앉은 넓은 만. 높은 자리에서 보니 바닷가의 굽은 선이 드러난다.
성산일출봉을 내려오는 돌길과 풀밭
내려오는 길의 돌계단과 풀밭. 걸어온 방향을 돌려보니 풍경의 구도가 달라졌다.

바다를 보고 먹는 해산물 점심

오전 내내 오르내린 뒤 점심에는 성산읍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둥근 그릇에는 붉은 국물과 꽃게, 문어, 조개가 함께 담겨 있었다. 젓가락과 가위가 나란히 놓인 식탁을 보면 먹기 전에 잠깐 손을 멈추고 그릇을 들여다보게 된다. 바다를 멀리서 본 뒤 다시 해산물이 담긴 그릇 앞에 앉으니 아침부터 보아 온 풍경이 식탁에서도 이어지는 듯했다. 사진으로는 국물의 맛을 그대로 전할 수 없지만, 껍데기를 발라 먹고 국물에 손이 가는 음식이라는 점만은 그 차림에서 읽힌다.

꽃게와 문어 조개가 담긴 해산물 국물
성산읍 점심 식탁의 해산물 국물. 꽃게와 문어, 조개가 한 그릇에 담겼다.

함께 놓인 다른 그릇도 붉은 색이지만 모습은 달랐다. 가늘게 썬 채소와 해산물이 국물 위를 채웠고, 별도의 접시에는 얇게 썬 문어가 담겨 나왔다. 같은 바다 음식이라도 따뜻한 국물과 얇은 해산물 조각의 질감은 다르다. 오전 산길에서 사용한 다리를 쉬게 하며 음식을 천천히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다음 목적지로 바로 움직이기 쉬운데, 이 식탁이 있었기에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본 오전과 가까운 해변으로 내려갈 오후 사이에 자연스러운 틈이 생겼다.

채소와 해산물이 담긴 붉은 국물 음식
채소와 해산물이 어우러진 붉은 그릇. 같은 식탁에서도 다른 질감이 눈에 띄었다.
얇게 썬 문어가 놓인 점심 접시
얇게 썬 문어가 놓인 접시. 점심이 끝날 즈음까지 식탁에 바다의 맛이 남았다.

광치기해변에서 다시 본 일출봉

점심 뒤에는 광치기해변에 섰다. 아까까지 올라가 있던 성산일출봉이 이번에는 바다 건너의 커다란 실루엣으로 보인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볼 때는 바닷가가 얇은 곡선 같았는데, 땅으로 내려와 보니 모래와 돌이 넓은 면을 만든다. 해변은 환한 흰색보다 검고 갈색에 가까운 색이 많았다. 구름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바다에는 조금씩 푸른빛이 들어왔다. 같은 봉우리를 배경으로 찍었어도 아침 입구 사진과 이 해변 사진이 서로 다른 장소처럼 보이는 이유다. 오전에는 바다를 보려고 높이 올라갔고 정오에는 산의 전체 모양을 보려고 아래로 내려왔다. 해변에 서면 정상의 작은 굴곡까지 세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봉우리와 바다 사이의 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그 위를 걸었다는 사실 때문에 먼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 한 장소를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 연달아 본 덕분에 광치기는 단순한 다음 정류장이 아니라 오전의 산책을 완성하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오전에 올랐던 봉우리가 바다 너머로 낮게 누웠다.

해안을 따라 몇 걸음만 옮겨도 일출봉은 화면의 한쪽으로 밀리고 바다가 중심을 차지한다. 사진에는 파도 앞의 짙은 해변과 먼 수평선이 함께 남았다. 제주관광공사는 광치기해변을 성산일출봉과 용암 해안 지형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소개한다. 썰물 때 드러나는 바닥의 모양과 검은 모래도 이곳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날 사진에서 세밀한 바닥 무늬가 모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해변을 가로지르는 어두운 색만으로도 앞서 본 초록 분화구와는 전혀 다른 제주를 느낄 수 있었다. 광치기해변 안내

광치기해변의 바다와 먼 수평선
광치기해변의 수평선. 낮은 파도와 짙은 해변이 길게 이어진다.

김녕, 흐린 하늘 아래 더 밝아진 물빛

오후에는 동쪽 해안을 따라 김녕 바다로 이동했다. 처음 본 장면은 바위 가장자리에서 내려다본 물놀이터였다. 멀리에는 패들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고, 물 안쪽에는 작은 튜브와 수영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흩어져 있었다. 해변은 오전의 잿빛 산이나 광치기의 검은 모래와 달리 물 자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청록색이 아주 밝은 곳과 돌 가까이에서 짙어지는 곳이 맞닿아 있었다. 구름이 남아 있는 날인데도 수면의 색이 이렇게 분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김녕 바다에서 패들보드와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김녕 바다의 물놀이 구역. 멀리 작은 패들보드와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김녕의 맑은 청록색 바다와 검은 바위
검은 바위 가장자리에 닿은 김녕의 투명한 바닷물. 얕은 부분에서 물색이 밝아진다.

김녕에서는 모래만 보지 않고 바위 쪽에서도 오래 머물렀다. 바위가 물 아래로 이어지는 부분은 물이 맑아 경계가 잘 드러나고, 조금만 멀어지면 바닥을 읽을 수 없을 만큼 색이 짙어진다. 사람들은 가까운 얕은 구역에 모이고, 그 바깥에서는 패들보드가 느리게 지나간다. 넓은 사진에는 바다 위의 움직임이 한꺼번에 들어오지만 바위 가까이에서 찍힌 사진에는 물과 돌만 남는다. 같은 시간에 같은 해변을 찍은 장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화면의 밀도가 다르다. 한곳에서만 바라봐도 연한 민트색과 초록, 회색이 계속 섞인다. 바다 위의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지만 해안의 돌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놀이를 직접 했는지보다 그 움직임과 돌의 대비를 바라본 시간이 사진에 더 선명하게 남았다. 보기 좋은 물빛에 이끌려도 바위 가장자리는 미끄러울 수 있으니 발을 디딜 곳은 천천히 확인해야 한다.

김녕 바닷물 아래로 이어지는 검은 바위
김녕 바다의 얕은 물과 검은 바위. 돌의 모양이 물 아래까지 이어져 보인다.

방파제 쪽으로 눈을 돌리면 빨간 등대가 흐린 하늘 아래 작은 점처럼 선다. 그쪽은 물놀이 구역과 다르게 훨씬 먼 바다로 시선이 열린다. 패들보드와 수영하는 사람이 보이는 가까운 수면, 바위 밑의 투명한 물, 등대 너머의 잔잔한 바다가 한 해변에 함께 있었다. 제주관광공사가 김녕해수욕장의 밝은 물빛과 현무암 지형을 함께 소개하는 이유가 이 짧은 이동만으로도 이해됐다. 장소의 이름만 적으면 하나의 해변이지만,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사진이 세 장의 다른 바다처럼 나오는 곳이다. 김녕해수욕장 안내

김녕 방파제 끝의 빨간 등대
김녕 방파제 끝의 빨간 등대. 가까운 물놀이 풍경 너머로 시선이 열린다.

동복리의 창과 저녁 식탁

늦은 오후에는 동복리 쪽으로 이동했다. 방에 놓인 두 개의 침대와 창 너머 바다를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아침에는 일출봉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봤고, 오후에는 바위 바로 옆에서 수면을 들여다봤다. 이제는 창틀과 난간을 사이에 두고 조금 떨어져 바다를 보는 차례였다. 같은 수평선이라도 하루의 끝에 방 안에서 바라보니 움직일 곳을 찾기보다 잠시 멈추고 싶어졌다. 사진에 남은 도로와 작은 항구의 모양은 이곳이 관광 해변의 중심보다 마을 생활에 가까운 자리임을 보여 준다.

동복리 숙소 창에서 바라본 바다와 마을
동복리 쪽 숙소 창에서 바라본 바다와 낮은 마을. 저녁 전에 잠시 머문 풍경이다.

저녁 식사 장소 근처에는 흰 조개껍데기가 박힌 검은 돌이 있었다. 낮의 성산일출봉에서 보았던 거친 바위와 김녕 물 아래의 현무암을 떠올리게 했지만, 이 돌은 누군가 작은 껍데기를 하나씩 붙여 꾸민 흔적이 있어 표정이 달랐다. 바닷가의 재료가 산책길에서는 지형이 되고, 마을에서는 손이 닿은 장식이 된다. 밥을 먹으러 들어가는 짧은 길에서 눈을 끈 것은 메뉴판보다 이 돌의 흰 점들이었다. 해가 낮아진 뒤에도 제주의 검은 돌을 새롭게 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동복리 길가의 검은 돌
동복리 길가의 조개껍데기 장식 돌. 검은 돌 위에 흰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식탁에는 붉은 양념의 해산물 요리와 구운 음식, 생선이 차례로 놓였다. 점심에도 해산물을 먹었지만 아침 등산 뒤의 빠른 점심과 저녁에 자리를 잡고 먹는 식사의 분위기는 달랐다. 사진 속 그릇은 한 장에 다 들어오지 않아 카메라가 접시 사이를 여러 번 옮겨 다녔다. 매운 양념이 있는 그릇 옆에는 구운 음식의 갈색 면이 보이고, 마지막에는 길게 놓인 생선이 한 접시를 거의 채운다. 여러 음식을 한꺼번에 자랑하려는 장면보다 하루 동안 움직인 뒤 식탁 앞에 오래 앉아 있었을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흰 밥과 국, 초록 잎이 담긴 접시가 큰 요리 주변을 채운다. 성산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다음 바다를 향해 다시 움직일 생각이 앞섰다면, 이 저녁에는 더 멀리 갈 장소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밖에서 본 조개껍데기 장식과 숙소 창의 잔잔한 바다까지 함께 떠올리며 하루의 속도를 조금 늦출 수 있는 자리였다.

새우와 채소가 보이는 저녁 해산물 요리
동복리 저녁 식탁의 붉은 해산물 요리. 큼직한 새우와 채소가 함께 보인다.
저녁 식탁에서 구워지는 음식과 해산물 요리
붉은 요리 옆에서 구워지는 저녁 음식. 여러 접시가 차례로 식탁을 채웠다.
길게 놓인 구운 생선과 저녁 반찬
저녁 식사 끝에 남은 구운 생선 한 접시. 길게 놓인 생선이 상의 중심을 차지한다.

돌아보면 이 하루는 성산일출봉에서 시작해 해변으로 두 번 내려오고, 김녕을 지나 동복리에서 끝났다. 한때는 발밑에 있던 바다가 광치기에서는 눈앞으로, 김녕에서는 손을 뻗을 만큼 가까운 수면으로, 저녁에는 창 너머의 먼 빛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어느 한 장의 절경보다 아침에 보았던 구름 낀 초록 분화구와 오후의 옅은 청록색 바다가 서로 연결되는 느낌이다. 맑은 날의 푸른 하늘을 만나지 못했어도 바위와 물의 색은 충분히 풍부했다. 제주 동쪽을 하루에 다 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높이를 바꾸고 거리를 바꾸며 바다를 보는 방법은 조금 더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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