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행오늘물때 저널
바다 여행 SEA NOTE 18

사이판의 서로 다른 바다를 잇다: 가라판의 밤부터 새섬 전망대까지

가라판의 밤거리와 야시장, 타포차우산, 동쪽 바위 해안, 반자이 절벽과 새섬을 따라 걸은 사이판 사흘의 기록.

새섬 전망대에서 본 작은 섬과 바다

구름 아래에서 시작된 사이판의 첫 오후

1월 6일 늦은 오후, 숙소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예상했던 짙은 파랑보다 부드러운 회색이었다. 하늘에 구름이 넓게 퍼져 있었고, 수영장 옆 잔디와 야자수에는 아직 낮의 빛이 남아 있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당장 바다로 달려가야 할 것 같지만, 이때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는 편이 좋았다. 낮은 건물들 너머로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고, 습한 공기가 몸에 닿는 순간에야 멀리 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사진 속 풀장과 리조트 건물은 화려한 명소라기보다 앞으로 며칠 동안 돌아올 기준점이었다.

숙소의 잔디와 야자수, 수영장 주변 풍경
사진 · 구름 낀 늦은 오후, 야자수와 잔디가 이어진 숙소 주변.

가라판 쪽을 바라보면 바다 여행지 특유의 낮고 여유로운 도시 풍경이 펼쳐졌다. 대단한 전망대에 오른 것이 아닌데도 길과 지붕, 그 끝의 하늘이 한 장면에 담겼다. 이런 첫 풍경은 나중에 기억을 꺼낼 때 의외로 오래 남는다. 어느 해변에 먼저 갔는지보다, 도시가 어떤 색으로 맞아 주었는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오후의 흐린 빛은 건물의 그림자를 줄여 주었고, 덕분에 걷기 전부터 이곳의 거리와 바다가 가깝게 느껴졌다.

구름 낀 오후의 가라판 시가지
사진 · 가라판 일대의 낮은 건물과 흐린 하늘을 바라본 첫 전망.

밤에는 조명이 켜진 상점가로 발길을 옮겼다. 낮에 보았던 조용한 거리와 달리 간판의 노랑, 파랑, 흰빛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왔다. 거리 공연이 이어지는 앞쪽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잠깐 멈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저녁 산책의 흐름이 바뀌었다. 공연을 오래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움직임과 음악은 여행의 시작을 선명하게 만들어 준다. 사진에는 무대 앞의 밝은 표정 대신 사람들의 동작과 거리의 빛을 남겼다.

이어서 들른 가게에서는 진열대를 천천히 훑었다. 여행지의 상점은 필요한 물건을 사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곳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창이다. 과일 코너의 둥근 모양과 쌓인 색을 한참 바라보았고, 먹거리를 고르는 평범한 시간이 관광지의 장면만큼 즐거웠다. 상점 바깥으로 나오면 다시 밤공기가 느껴졌다. 실내의 선명한 조명과 거리의 어둠이 번갈아 나타나는 동안, 처음에는 낯설기만 하던 길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가게 이름이나 물건 가격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전환이었다. 낮에는 숙소에서 바라본 낯선 도시였는데, 밤에는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동네가 되었다. 여행 초반에 느끼는 작은 익숙함은 이후에 더 먼 곳으로 나설 용기를 준다.

첫날의 밤은 특별한 일정 하나로 요약되지 않는다. 숙소에서 거리로, 공연 앞에서 가게 안으로 옮겨 간 짧은 걸음들이 사이판의 리듬에 적응하게 해 주었다.

가라판 상점 안 밝은 상품 진열대
사진 · 밤 산책 중 들른 가게의 밝은 진열대.
상점의 과일 진열대
사진 · 색과 모양이 가지런히 쌓인 과일 코너.

느리게 먹고, 밤거리를 다시 걷다

1월 7일 오후는 작은 우연과 느린 식사로 기억한다. 먼저 눈길을 붙잡은 것은 박스 안에 모여 있던 아기 고양이들이었다. 주황빛으로 찍힌 박스 안에서 고양이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작은 생명들을 한참 내려다본 뒤 식탁으로 자리를 옮기니, 여행의 낮 시간이 느슨하게 풀렸다. 접시에 나온 샌드위치와 피자는 이름만으로는 평범하지만, 낯선 거리에서 천천히 먹는 점심은 이동 사이에 숨을 고르는 시간이 된다. 어디를 더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잦아들어 식탁 위의 색과 대화, 창밖의 빛까지 또렷해졌다.

박스 안에 함께 있는 아기 고양이들
사진 · 오후에 만난 박스 안의 아기 고양이들.
샌드위치와 곁들임이 담긴 점심 접시
사진 · 오후의 느린 식탁에 놓인 샌드위치와 곁들임.
점심 식탁 위 피자
사진 · 여러 사람이 나눠 먹기 좋았던 피자 한 판.

해가 저물 무렵 다시 가라판 거리로 나왔다. 전날 지나쳤던 밝은 상점 앞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초록색 치마와 하얀 장식이 조명 아래 움직일 때마다 길 위의 분위기도 한결 경쾌해졌다. 무대를 따로 찾아온 관객이 아니어도, 지나가다 잠깐 멈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 하나의 작은 객석을 만든다. 이 장면이 좋았던 이유는 공연만 따로 떼어 볼 수 없어서다. 뒤편에는 가게의 환한 내부가 있고, 앞에는 걸음을 멈춘 여행자의 시간이 있었다. 사이판의 밤은 바다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여행답게 흘렀다.

가라판 상점 앞에서 춤추는 공연자 세 명, 얼굴 가림
사진 · 가라판 상점 앞 거리 공연.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은 가렸다.

조금 더 걸으니 목요일 밤의 가라판 야시장이 이어졌다. 노점 음식이 한 줄로 놓인 풍경 앞에서는 무엇을 먼저 볼지 고르는 것부터 즐거웠다. 구운 고기와 볶음 요리, 꼬치가 한 화면에 들어오고 조리대 앞의 손길은 쉴 틈이 없었다. 저녁을 먹는 일이 단순히 메뉴를 주문하는 절차가 아니라, 한 바퀴 돌며 냄새와 색을 비교하는 산책이 된다. 사진에 담긴 음식의 이름을 모두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큼직한 구이와 윤기 나는 양념이 그 밤의 북적임을 되살린다. 야시장에서 오래 남은 것은 음식의 양뿐만이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불 앞에서 고기가 익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접시를 들여다봤다. 줄을 서는 동안에도 다음 가게를 살필 수 있어서 걷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졌다. 여행지의 밤거리는 종종 기념품이나 간판 사진으로 남지만, 이곳에서는 음식대 앞에서 무엇을 고를지 망설이는 시간이 더 생생하다. 낮에 먹은 느긋한 점심과 비교하면 같은 날의 식사가 전혀 다른 표정을 가진 셈이다.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포장마차의 불빛은 더 또렷해졌다.

가라판 목요 야시장의 구이와 볶음 요리
사진 · 가라판 야시장의 구이와 볶음 요리, 꼬치가 놓인 음식대.

산 위에서 섬의 윤곽을 보다

1월 8일 아침에는 차를 타고 섬 안쪽의 높은 곳으로 향했다. 흐린 하늘 아래 도로를 오르다 보니 바다만 보고 있던 시선이 산과 마을로 옮겨 갔다. 타포차우산 부근에는 노란 차와 가파른 지형이 함께 보였고, 정상 쪽에는 두 팔을 벌린 조형물이 서 있었다. 사이판을 작은 섬으로만 생각했다면 이곳의 시야는 의외다. 산등성이 아래로 마을이 펼쳐지고, 그 너머의 해안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길게 뻗는다. 해변에서 볼 때 하나의 수평선 같았던 바다가 높은 곳에서는 여러 겹의 경계로 나뉘었다.

타포차우산 길의 노란 지프와 언덕
사진 · 타포차우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본 노란 차와 구릉.
타포차우산 정상 부근 조형물
사진 · 타포차우산 정상 부근에 선 조형물.
타포차우산에서 내려다본 마을과 바다
사진 · 산 위에서 바라본 마을, 능선, 바다의 넓은 윤곽.

구름이 풍경을 완전히 가린 날은 아니었다. 밝은 틈이 열릴 때마다 바다의 색이 달라졌고, 지붕들이 모여 있는 쪽과 숲이 짙은 쪽이 한눈에 구분됐다. 이 전망을 보고 나니 이후의 이동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지도에서 북쪽, 동쪽이라고 부르던 방향이 실제 능선과 해안의 형태로 머릿속에 들어온 것이다.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아래로 내려가 만나게 될 바위 해안과 절벽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사진을 다시 보면 하늘은 맑고 투명한 엽서의 색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 바로 그 구름 덕분에 산과 바다 사이의 명암이 더 잘 보인다. 먼 해안은 흐릿하고 가까운 능선은 선명해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여러 번 오간다. 좋은 날씨를 기다려야만 풍경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나쳤을 장면이다. 그날의 하늘까지 포함해 기억해야 실제로 걸었던 사이판이 된다. 섬의 풍경은 해수욕장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도 그때 분명해졌다.

코코넛과 바위가 있는 동쪽 길

산을 내려온 뒤에는 식물이 무성한 길과 작은 정원을 지나 동쪽으로 움직였다. 붉은 꽃은 잎사귀 사이에서 유난히 선명했고, 야자나무가 높게 선 길에는 느슨한 낮빛이 걸려 있었다. 코코넛을 놓은 곳에서 잠깐 쉬며 껍질이 두껍고 거친 열매를 가까이서 보았다. 여행 사진에서 코코넛은 흔한 소품이지만, 막 열어 놓은 모습과 쌓인 껍질을 보니 열대의 풍경이 조금 더 손에 잡혔다. 차에서 내려 걷는 짧은 구간마다 식물의 밀도와 바람의 방향이 달라져, 같은 섬 안에서도 다른 장소에 들어온 듯했다.

초록 잎 사이의 붉은 꽃
사진 · 초록 잎 사이에서 유난히 또렷했던 붉은 꽃.
막 열어 놓은 코코넛들
사진 · 길가에서 본 막 연 코코넛과 거친 껍질.
동쪽 길의 높이 뻗은 야자나무
사진 · 동쪽으로 가는 길, 하늘을 향해 뻗은 야자나무.

동쪽 바위 해안에 닿자 풍경의 결이 완전히 바뀌었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기대하고 무심코 걸어 들어가기에는 바닥이 거칠었다. 둥글게 패인 웅덩이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파도 소리는 바위 사이에서 더 크게 들렸다. 바위 아래로 몸을 낮추면 작은 동굴처럼 그늘이 생겨 같은 해안을 다른 틀로 보게 된다. 이곳에서는 물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발을 놓을 곳을 살피고, 다음 바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천천히 확인하는 일이 더 기억에 남았다. 멀리 펼쳐진 푸른 바다와 발밑의 어두운 돌이 동시에 시선을 붙잡았다.

동쪽 해안의 바위 처마
사진 · 바위가 지붕처럼 앞으로 나온 동쪽 해안의 길.
바위 사이 물웅덩이와 바다
사진 · 바위 사이에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와 바깥 바다.
해안에서 싹이 튼 코코넛
사진 · 바닷가에서 싹이 올라온 코코넛 하나.
바위 틈 그늘에서 본 해안
사진 · 바위 틈의 그늘에서 바라본 해안.

해안에 놓인 싹 튼 코코넛은 특히 오래 보았다. 파도와 바람이 드나드는 자리에서도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북마리아나의 해안 접근 안내를 보면 이 일대에는 바위와 물웅덩이가 있는 작은 해안들이 이어진다. 사진 속 장소의 이름 하나를 외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이곳의 바다가 서쪽의 잔잔한 휴양지 풍경과 전혀 다른 표정을 가졌다는 점이었다. 이 해안의 재미는 장면이 멀리서 한눈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금 이동하면 바위가 액자가 되고, 다시 몇 걸음 옮기면 작은 물웅덩이가 바다의 밝은 부분을 비춘다. 굴곡이 많아 같은 곳을 찍어도 카메라를 어느 높이에 놓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졌다. 코코넛 싹처럼 작은 것을 발견하고 나면 커다란 절벽만 보던 눈이 발밑으로 돌아온다. 물결이 드나드는 바위에서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고, 잠시 멈춰 파도의 간격을 보는 편이 어울렸다.

점심 식탁에서 북부의 기억으로

한낮에는 다시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갔다. 미국 국기가 걸린 외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아까까지 발밑의 돌을 살피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국물 있는 음식, 파스타, 뜨거운 접시에 담긴 고기와 해산물이 차례로 놓였다. 밖에서 많이 걷고 들어온 뒤라 접시마다 다른 온기와 냄새가 반가웠다. 사이판을 돌아다니며 먹은 음식은 특별한 미식 목록을 만들기보다 이동의 쉼표가 되었다. 산 위의 바람과 동쪽 해안의 거친 바닥을 지나 식탁에 앉았다는 순서 때문에, 점심 한 끼가 하루의 앞뒤를 나누는 지점으로 남았다.

미국 국기가 걸린 점심 식당 바깥
사진 · 해안 산책 뒤 들른 식당의 외관.
점심 식탁의 따뜻한 국물 요리
사진 · 걷고 난 뒤 식탁에 놓인 따뜻한 국물 요리.
점심에 먹은 구운 해산물
사진 · 점심에 나온 구운 해산물 접시.

오후에는 섬 북쪽의 역사적 장소들을 지났다. 숲 그늘 아래에 놓인 포와 콘크리트 유적은 앞서 본 밝은 바다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나 이곳의 절벽과 해안은 아름다운 전망인 동시에 전쟁의 기억을 품고 있다. 관광지 표지판 앞에서 사진만 찍고 지나가기에는 이야기가 무거웠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니, 숲이 유적을 조금씩 감싸고 있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북마리아나 관광청의 역사 유적 안내를 함께 읽으면 이 장소들이 북부 해안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북부 옛 군사 유적 안내 공간
사진 · 북부의 옛 군사 유적과 주변 숲.
나무 그늘에 놓인 옛 포
사진 · 나무 그늘 아래 남아 있는 포.

반자이 절벽에 도착했을 때는 절벽의 높이보다 먼저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위가 끝나는 자리에서 물빛이 갑자기 짙어졌고, 파도는 아래쪽에서 하얗게 부서졌다. 이곳에는 전쟁 말기에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아픈 역사가 남아 있다. 눈앞의 풍경을 예쁘다는 말만으로 마무리할 수 없어서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웅장했지만, 그 장면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조심스러움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카메라를 먼저 들게 되지만, 이곳에서는 설명을 읽고 주변을 다시 보는 순서가 필요했다. 낮에 올랐던 산과 바위 해안을 떠올리면, 하나의 섬 안에서 자연과 역사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전망대에서 보는 파도의 흰 선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도 그 장소에 담긴 사연까지 한 장으로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한 번 더 발걸음을 늦췄다.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여행이 즐거운 사진뿐 아니라 그 땅의 기억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자이 절벽과 짙은 바다
사진 · 반자이 절벽에서 내려다본 짙은 바다와 흰 파도.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오래 남는 바다

이어 그로토 쪽으로 이동했다. 다이빙 명소를 알리는 표지와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보니 물속의 풍경을 상상하게 됐지만, 이날 사진에 남은 것은 입구와 길의 모습이다. 깊은 푸른빛을 찾아 내려가는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바깥 풍경을 따라 움직였다. 그로토를 방문했다는 것과 실제로 물에 들어갔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과 사람들의 걸음을 바라본 기억만 남긴다. 섬의 매력은 체험 목록을 모두 채워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도착한 곳에서 잠시 멈추고 주변의 소리와 경사를 느끼는 시간도 충분히 여행이 된다.

그로토 다이빙 장소 안내판
사진 · 그로토로 향하는 길에서 본 다이빙 장소 안내판.
바위 사이 그로토 입구로 내려가는 길
사진 · 바위 사이로 아래쪽을 향해 이어지는 그로토 입구 길.

마지막으로 새섬 전망대에 섰다.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 그 뒤의 수평선, 앞쪽의 울창한 절벽이 한 화면에 겹쳤다. 동쪽 해안에서 바위를 가까이 들여다봤다면 여기서는 멀리 떨어져 전체 윤곽을 읽게 된다. 같은 바다라도 거리와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을 보여 준다는 말이 이곳에서는 과장이 아니었다. 굽은 해안과 나무의 초록, 섬 주변의 밝은 물빛을 차례로 보며 오늘 지나온 길을 되짚었다. 산 위에서 보았던 섬의 윤곽이 바닷가를 거친 뒤 비로소 실제 크기와 질감을 얻은 듯했다.

새섬 전망대에서 본 작은 섬과 바다
사진 · 새섬 전망대에서 바라본 작은 섬과 푸른 바다.

저녁에는 시내로 돌아와 초밥집의 불빛 아래 앉았다. 회와 면, 초밥이 놓인 식탁은 낮의 바람과 바위를 떠올리며 하루를 정리하기 좋은 자리였다. 처음 사이판에 도착했을 때는 리조트 곁의 부드러운 오후가 섬의 첫인상이었다. 며칠 사이에 가라판의 밤거리, 산 위의 바람, 코코넛이 있는 길, 물웅덩이와 동굴 같은 바위, 그리고 기억을 품은 북부 절벽까지 만났다. 마지막에 떠오르는 것은 어떤 한 장의 대표 사진보다 장면들이 바뀌는 속도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식탁에 앉아도 조금 전 새섬을 둘러싼 물빛이 선명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익숙한 해변만 찾기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의 해안을 천천히 잇고 싶다.

시내 저녁 식당의 간판
사진 · 긴 하루를 마치고 들어선 시내의 저녁 식당.
저녁 식탁의 회 접시
사진 · 저녁 식탁에 오른 회 접시.
저녁 식탁의 초밥
사진 · 하루의 끝에 나누어 먹은 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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