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먼저 만난 여행 동반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셀톤 포인트 선착장 바닥에 고양이 한 마리가 느긋하게 누워 있었다. 우리는 배를 놓칠까 봐 시계를 보고, 구명조끼를 챙기고, 어디에 서야 하는지 두리번거리는데 고양이에게는 그 모든 소동이 배경음인 듯했다. 아침부터 나만 너무 바쁘게 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마무틱섬으로 건너가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시내로 돌아와 노을을 볼 계획이었다. 계획표에는 고양이도, 바다 위로 솟은 낙하산도, 섬에서 만난 커다란 도마뱀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됐다.
제셀톤 포인트에서 고양이가 먼저 출발을 재촉했다
선착장은 아침부터 작은 소리들이 겹쳐 있었다. 배를 찾는 사람, 구명조끼를 걸치는 사람, 짐을 다시 묶는 사람. 바다로 나가는 길은 사진 속처럼 우아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가방 속에 넣은 물건을 한 번 더 확인하다가, 줄이 움직이면 괜히 나도 서둘러 따라가게 된다. 그 와중에 고양이는 사람들이 지나갈 만큼만 자리를 내주고는 다시 몸을 길게 폈다. 내가 여행에서 배우고 싶은 여유가 저 동물에게 이미 있었다. 잠시 고양이를 보느라 줄의 방향을 놓쳐, 일행의 등을 찾아 고개를 두 번이나 돌린 것은 비밀로 하고 싶다.


배가 정박한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도시의 건물과 바다가 한 화면에 들어왔다. 숙소에서 바라보던 코타키나발루는 거리와 신호등으로 기억됐는데, 물가에 서니 도시의 뒷면을 처음 보는 기분이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색이 유난히 선명했고, 햇빛은 지붕 아래의 그늘과 물 위를 또렷하게 갈랐다. 기다릴 때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지만 막상 배에 오르자 조금 전의 분주함이 금세 작아졌다. 선착장이 뒤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고서야 오늘은 정말 섬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육지에서 볼 때 바다는 하나의 넓은 면인데, 배 위에서는 계속 다른 표정으로 밀려온다. 선체가 파도를 넘을 때마다 가방끈을 괜히 한 번 더 잡았다. 무서운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손은 꽤 성실했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물보라가 가끔 튀고, 뒤돌아보면 방금 떠난 항구가 벌써 멀다. 목적지에 빨리 닿는 교통수단이라고만 생각했던 배가 이날에는 여행의 첫 장면이 되었다. 마무틱의 해변에 닿기 전부터 몸이 먼저 도시의 속도를 벗어났다.

마무틱섬에서는 시계를 볼 일이 줄었다
마무틱은 툰쿠 압둘 라만 해양공원에 속한 작은 섬이다. 섬에 가까워질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은 건물이 아니라 나무와 낮은 해변, 그리고 물 위에 멈춘 배들이었다. 선착장에서는 마음이 바빴는데 섬에 닿자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어딘가를 빠짐없이 돌아봐야 할 만큼 큰 곳이 아니라, 눈에 드는 자리에서 충분히 머물 수 있는 크기라는 점이 좋았다. 첫 목표도 거창하지 않았다. 그늘을 찾고, 바다를 보고, 물이 얼마나 맑은지 가까이서 확인하는 것.


햇빛이 얕은 물 위로 떨어질 때 바닥의 무늬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물가에서는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파도가 모래를 지나가는 모양이 계속 달라진다. 그 작은 변화가 재미있어 한동안 바다를 내려다봤다. ‘이제 들어갈까, 조금 더 볼까’ 하고 망설이다가 발을 적셨다. 생각보다 시원한 느낌에 어깨가 먼저 움찔했고, 곧 다시 한 발을 보탰다.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청록색인 바다도 발치에서는 투명한 층과 더 짙은 층으로 나뉘었다. 이곳에서는 풍경을 볼 때보다 그 안으로 조금 들어갔을 때 더 오래 웃게 됐다.

해변 한쪽에는 그늘을 만드는 나무와 바다를 향해 뻗은 길이 있었다. 햇볕 아래에 오래 있다가 그늘에 들어가면 공기가 갑자기 부드러워진다. 바다로 나간 배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처음에는 어색하다가 곧 아깝지 않아졌다. 휴양지에서 쉬는 일도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다. 평소라면 다음 일정을 검색했을 시간에 나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배 몇 척을 세고 있었다.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늘 아래에서 마음이 느슨해지던 감각은 남았다.


섬이 작다고 풍경이 단순한 것은 아니다. 모래가 밝게 보이는 쪽에서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나무와 건물, 배가 겹쳐 보인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바다의 색을 봤고, 걷기 시작하니 섬의 생활이 보였다. 사람들이 모이는 그늘, 잠깐 쉬어 가는 자리, 음식을 찾으러 움직이는 동선이 하나의 작은 마을처럼 이어졌다. 바다만 보고 돌아갔다면 마무틱을 파란 배경으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하루를 머물다 보니 작은 섬에도 오전과 오후의 표정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 위에서는 하늘을 보는 방법도 달랐다
한낮에는 다시 배에 올랐다. 이번에는 이동하는 배라기보다 바다 위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자리였다. 고개를 들자 검고 흰 낙하산 아래 두 사람이 공중에 떠 있었다. 패러세일링을 가까이서 본 순간, 먼저 든 생각은 ‘와, 높다’였고 그다음은 ‘내가 저 위에 있으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였다. 아래에서 구경할 때는 멋있고 간단해 보이지만, 배 위에서 바람과 물결을 함께 느끼면 그 높이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난간을 놓지 않았다. 멀쩡한 배 위의 사람이 그렇게 바짝 붙잡고 있을 일인가 싶어 혼자 웃었다.

공중에 떠 있는 사람들과 배 위에 남은 사람들의 하루는 그 몇 분 동안 전혀 다른 장면이었을 것이다. 위에서는 섬과 도시가 한꺼번에 보였을 테고, 아래에서는 낙하산 줄과 물결,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같은 바다를 각자의 높이에서 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여행에서 기억하는 것은 반드시 내가 직접 해낸 체험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용감한 순간을 가까이서 지켜본 일도 내 하루의 한 장면이 된다. 배가 방향을 바꿀 때까지 하늘을 자꾸 올려다봤다.
점심 뒤에 만난 섬의 진짜 느긋한 주민
섬으로 돌아와 메뉴판 앞에 서자 갑자기 현실적인 문제가 생겼다. 바닷물과 햇빛은 배를 고프게 만드는 데 협력적이다. 사진 속 메뉴를 한참 훑다가 볶음밥과 국물 있는 음식을 앞에 놓았다. 접시가 나오기 전에는 ‘여기서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할까’를 잠깐 고민했지만, 막상 숟가락을 들자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전부터 바다를 보고 움직인 뒤의 점심은 특별한 수식이 필요 없었다. 차가운 음료 한 모금,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의 순서가 그때는 꽤 완벽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해변으로 나가니 오전과는 다른 밝기가 바다 위에 얹혀 있었다. 구름은 멀리 모여 있었고 가까운 물은 더 환했다. 아무 계획 없이 물가에 서 있던 사람과, 바다를 등지고 그늘을 찾는 사람이 한 장면에 섞여 있었다. 나는 아침에 보던 자리를 다시 지나며 ‘아까 여기가 이렇게 파랬나’ 하고 중얼거렸다. 같은 장소를 다시 봐도 햇빛과 피로와 배부름에 따라 기억이 달라진다. 오전에는 섬에 도착했다는 들뜸으로 지나쳤던 나무와 길도 오후에는 좀 더 오래 눈에 들어왔다.


그때 풀 가까이에서 커다란 도마뱀이 나타났다. 물가와 풀숲을 오가며 제 할 일을 하는 듯했는데, 나는 순식간에 걸음을 멈췄다. 아침 선착장의 고양이는 사람이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이쪽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잠깐은 내가 방문객이고 저쪽이 이 섬의 오래된 주민이라는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느꼈다.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동물을 구경할 때의 흥분과 가까이 가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이 동시에 오는 순간이었다. 큰 도마뱀을 예상하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이 우연 덕분에 섬의 기억이 바다색 하나로만 남지 않았다.


도마뱀은 내 여행 계획에 관심이 없었고, 나도 더 이상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그늘에 서서 녀석이 물가를 오가는 모습을 보았다. 섬에 사는 동물 앞에서는 그 장소를 ‘내가 하루 빌려 쓰는 곳’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을 맑게 보존하고, 먹을 것을 함부로 남기지 않고, 야생동물을 건드리지 않는 일이 관광 안내의 문구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웃었지만, 돌아서는 길에는 이 짧은 만남이 섬을 존중하며 떠나라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시내로 돌아오자 바다의 색이 또 바뀌었다
오후를 지나 코타키나발루 시내로 돌아왔을 때, 바다에서 보낸 시간이 몸에 남아 있었다. 걸음은 조금 느려졌고 피부에는 햇볕을 오래 받은 날 특유의 열기가 있었다. 오셔너스 워터프런트 쪽에 닿자 섬의 낮은 나무 대신 도시의 건물과 넓은 데크가 펼쳐졌다. 같은 바다를 향하고 있는데도 섬에서는 물 가까이로 다가가고 싶었고 여기서는 잠시 떨어져서 바라보고 싶었다. 하루 종일 바다를 봤으니 이제 질릴 법도 한데, 해가 낮아지자 또 처음 보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몰 안에는 빨간 장식과 밝은 조명이 가득했다. 몇 시간 전까지 발치의 물결을 보고 있었는데 유리문 하나를 지나자 다른 하루가 시작된 듯했다. 실내의 시원함이 반가우면서도, 노을을 놓칠까 봐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바다 앞에 나왔을 때 하늘은 회색 구름 아래로 노란 빛을 흘리기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의 코타키나발루가 유명하다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은 실제로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까지 대신해 주지 않는다. 빛이 바뀌는 몇 분을 앞에 두고는 또 말수가 줄었다.


처음에는 구름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노을을 못 보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 구름이 오히려 하늘을 여러 층으로 나누었다. 아래는 금빛, 중간은 연한 주황, 위는 어두운 푸른색으로 천천히 옮겨 갔다. 아침 마무틱의 물이 바닥을 보여 주는 밝은 청록이었다면, 저녁의 바다는 하늘색을 받아 조금씩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거나 휴대전화를 들었고, 나는 한 장만 찍고 보겠다고 해 놓고 연달아 몇 장을 더 찍었다. 이런 때의 ‘한 장만’은 아침 선착장의 ‘금방 출발해’와 비슷하게 믿기 어려운 말이다.


해가 구름과 나무 사이로 낮아질 때는 사진보다 눈으로 보는 쪽이 바빴다. 셔터를 누르는 사이에도 색이 바뀌어, 방금 좋다고 생각한 구도가 금세 다른 장면이 되었다. 노을을 보러 와서야 하루의 길이를 제대로 실감했다. 아침에는 바다 건너 섬으로 가려고 줄을 섰고, 한낮에는 물 위의 낙하산과 섬의 도마뱀을 봤고, 이제는 도시 앞바다에서 지는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장소를 이동한 것은 맞지만, 마음속에서는 하루가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이어진 느낌이었다.

뜨거운 팬 앞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다
노을이 어두워진 뒤에는 오셔너스 안에서 저녁을 먹었다. 낮에는 섬의 간단한 점심이 그렇게 맛있더니, 밤에는 뜨거운 철판에서 올라오는 김이 또 새로운 이유로 반가웠다. 테판야의 메뉴 앞에서 잠깐 고르는 척했지만 사실 배고픔이 결정을 서둘렀다. 계란이 올라간 철판 요리와 국물 있는 면이 차례로 놓이자, 우리는 앞에 놓인 접시를 먼저 먹을지 사진을 먼저 남길지 짧은 회의를 했다. 결과는 늘 그렇듯 사진 몇 장, 그리고 빠른 식사였다.



식탁에서는 그날 가장 웃겼던 장면을 다시 골랐다. 누군가는 배 위에서 본 낙하산을, 누군가는 해변의 도마뱀을, 나는 자꾸 아침의 고양이를 떠올렸다. 사진으로 보면 작은 일인데 현장에서는 하루의 분위기를 바꿔 놓은 순간들이다. 섬의 푸른 물이나 도시의 붉은 노을처럼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풍경도 좋지만, 그 사이에 있던 사소한 이야기가 있어야 내 여행이 된다. 음식을 거의 다 먹고 나서야 몸이 하루 동안 꽤 많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갑자기 귀해졌다.

다음에 같은 하루를 보낸다면
마무틱섬에 다시 간다면 아침 배를 타기 전에 선착장 위치와 돌아오는 배의 시간을 먼저 확인하겠다. 바다를 오래 보려면 물과 그늘을 챙기고, 물속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젖은 물건을 담을 가방도 준비할 것이다. 섬에서는 야생동물을 멀리서 보고, 물가의 안내를 따르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 운항 장소와 이용 정보는 바뀔 수 있으니 출발 직전 제셀톤 포인트 공식 안내와 사바주 공원 안내를 확인하면 마음이 편하다. 이것은 멋진 여행법이라기보다 이날 내가 다음의 나에게 적어 두고 싶은 현실적인 메모다.
하지만 준비 목록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다. 선착장 바닥에 누워 있던 고양이 때문에 웃으며 출발했고, 워터프런트의 붉은 해를 보며 말을 아끼게 됐다. 그 사이 바다는 투명한 낮의 얼굴과 어두워지는 저녁의 얼굴을 모두 보여 줬다. 어디를 몇 군데 다녀왔는지 세지 않아도 꽉 찬 하루였다는 걸 안다. 사진을 다시 넘기면 바다보다 먼저 고양이가 보이고, 마지막에는 철판 위의 김보다 노을빛이 떠오른다. 코타키나발루의 하루는 그렇게 사소한 장면과 큰 풍경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남았다.